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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리스 | 2009/12/31 23:04 | 트랙백 | 덧글(53)

여신강림을 기다리며 - 성우 최덕희

이 세상에서 가장 의미 없는 질문중에 하나지만 가장 많이 오가는 질문중에 하나는 바로
"누가 최고인가"
라는 순위 경쟁의 질문일 것이다. 스포츠와 같이 기록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라면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경기'라는 것은 순위를 매기기 보다도 특색이 더욱 중요하다. 주연이 있으면 조연도 있어야 하고
필요한 역활에 따라서 신인도 충분히 기용될 수 있는것이 바로 이 업계다.
그러기에 실력이란 잣대보다도 개성이라는 잣대로 평가될 수 있는게 우리 업계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필자는 독자들에게 상당히 재밌는 질문을 던져보겠다.

"90년대의 최고의 스타는 과연 누구일까?"

그야말로 수만가지의 답이 나올 수도 있다. 봉신연의의 달기를 기억하는 사람은 양정화씨를.
로도스도 전기의 디트리히를 기억하는 사람은 이현진씨가.
카우보이 비밥의 페이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정미숙씨가 나올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단호하게 단 한 사람만을 입에 담을 수 있을 것 같다.

최덕희씨.

길면 길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여타 성우분들에 비해서 굉장히 짧은 기간 활동하셨지만
그 기간동안 가장 찬란한 빛을 발했던 "여신"을 말하는 것이다.

02년도의 필자의 기억.

시간축을 조금만 돌려서 필자의 기억으로 잠시 이동해보자.
2002년도는 한국인에게 있어서 굉장히 각별한 기억이 하나 있을 것이다.
월드컵. 그 붉은 물결은 외국에서도 주목할 정도로 굉장한 것이었다.
그러나 필자의 2002년은 월드컵으로 기억되는게 아니라 투니버스의 유선방송 송출로 인한 업계 진입으로써 기억되고 있다.
90년도의 애니 광풍이 어느 정도 사그라들고 지상파 3사가 더 이상 경쟁적으로 애니 편성을 하지 않기 시작했고
(뭐 KBS와 SBS는 디지몬과 포켓몬으로 경쟁하고 있었으며 탑블레이드가 선전했다.)
자연스럽게 필자는 애니를 접할 기회가 많이 줄어들었었다.
그 중에 투니버스의 유선방송 진입은 필자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았고,
저녁 10시 이후에 TV근처에도 가지 않았던 필자를 새벽 2~3시까지 TV앞에 붙잡아 놓았으며
그 때 보았던 수많은 애니들이 필자의 인생이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 중에서 "체포하겟어"란 작품의 "민호영"역활을 맡았던 최덕희씨는 단숨의 필자의 여신으로 자리잡기에 이른다.
그것으로 인하 집에서 게임기 이상의 역활을 하지 못하면 컴퓨터가 단숨에 정보 수집의 머신으로 변신하였고
그 조사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은 필자를 굉장히 당황하게 했다. 그녀는 그 때가 최전성기가 아니었다는 것과
이미 오래전부터 필자가 잘 알고 있었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90년대. 그 광풍의 시대에서 가장 찬란히 빛나던 사람.

필자의 좁은 식견이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이견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한국 애니계의 최 전성기는 바로 1990년대 라는 사실을 말이다.
당시 더빙애니계는 지상파 3사의 경쟁속에서 수많은 명작들이 탄상했으며, 평일 오후 5~7시는 온통 그들의 차지였다.
그 뿐인가? 일요일 아침의 디즈니 만화동산과 만화잔치는 늦잠 자는 아이를 깨우는 최고의 처방전이었으며, 그 지루한
전국 노래자랑을 끝까지 시청하게 했던 이유는 그 이후에 방영하는 날아라 슈퍼보드와 달려라 하니, 아기공룡 둘리 때문이었다.
이런 시장의 압도적인 지지속에서 수많은 국산 애니가 탄생하였고
바스토프 레몬과 라젠가, 레스톨 특수 구조대같은 작품들은 당시 일본의 애니와 밀리지 않는 퀄리티를 자랑하면서
우리도 일본을 넘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라는 즐거운 상상을 하게 해주었던 것이다.
그 때 그 시절. 최고의 히로인을 독점하듯이 했던 사람이 바로 최덕희씨였던 것이다.
세일러문의 세라, 웨딩피치의 피치를 연달아 맡으며 당시 3대 히로인인 중에 2명을 석권해내며(나머지 하나는 천사소녀 네티의 네티)
당시 소년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였다.
그 뿐인가. 마법소녀 리나의 리나 인버스는 그녀의 실력을 유감없이 드러낸 케릭터였으며 지금도 리나 인버스라는 케릭은
다른 사람과 비유할 수 없다고 하는 많은 업계인들의 의견이 있다.
거기에 포켓몬스터의 한지우나 명탐정 코난의 코난처럼 소년연기도 무난하게 소화하며 연기폭이 넓다는것까지 확인시켜주었다.
(사실 필자는 체포하겠어!의 민호영에서 그녀의 끝을 알 수 없는 잠재성을 보았다.)
결국 그녀는 시대를 주름잡는 여신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고, 그녀가 가는 곳은 지금까지 우리가 다다르지 못한 무언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여신의 질주는 갑자기 멈추고 말았다.

너무나도 갑작스런 업계의 이탈

그 와중에서 갑자기 이민을 선택한 그녀의 행보는 업계에 강한 충격을 주었다.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야 하는 말이지만 그녀가 이민을 떠났던 03년 이후. 1~2년만 더 지나면 투니데이와 WE프로젝트로 발촉된
성우의 다양한 컨탠츠 진입이 확정되었고, 그녀는 더욱더 많은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여신을 넘어서 전설에 가까운 존재로 남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녀가 떠난 이유 앞에서 아무런 아쉬움도 내비쳐서는 안된다.
그녀는 필자의 여신이기도 했지만 한 가정의 어머니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자녀의 교육을 위해서 자신의 찬란한 미래를 던지고 외국으로 떠난 그 선택에 우리가 무슨 참견과 아쉬움을 내비칠수 있단 말인가.
그녀느 그렇게 여신의 자리에서 물러나 업계를 떠났다.

여신의 강림을 영원히 기다리며

최근 1년 사이에 상당히 기억속에서 잊혀졌던 작품들의 신 시리즈가 등장했다.
'체포하겠어"와 '슬레이어스'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 2작품은 전성기의 퀄리티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으며 평작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 작품들의 행보를 보면서 필자는 엉뚱하게도 최덕희씨가 떠올랐다.
그리고 생각한다.
"그녀가 다시 돌아와 이 2작품의 더빙을 맡으면 좋겠다."라고.
사실 이 2작품의 실패는 자신들의 전성기가 지난 시점에 나왔다는게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최덕희씨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녀는 이제 필자의 10대에 서 있었던 여신의 모습이 더 이상 아닐것이다.
이미 어느정도 녹슬어버린 실력 앞에서 실망감만 더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팬이라고 하는건 참 역설적인 존재다.
현역에 있을때는 그렇게 비난을 못해서 안달이거늘(실력이라던가 배역의 문제라던가 연기라던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들과 같은 세상에서 살아가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기뻐하는 존재가 바로 팬이다.
그러기에 필자는 소망한다.
최덕희씨는 언젠가는 반드시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한국 애니 업계가 어느정도 소강상태에 접어든 지금. 그녀가 다시 돌아와 그 천상의 목소리로 90년대의 전성기를
되살려줬으면 하는건 너무나도 지나친 바람인 것일까?

by 카리스 | 2009/06/14 18:27 | 카리스의 업계인 이야기 | 트랙백 | 덧글(3)

밤하늘에 빛나는 보름달을 생각하며 - 성우 이용신

국내 애니계의 움직임에 대해서 나름대로 주목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05년도의 서울시청 앞 광장 앞에서 있었던 그 날의 일에 대해서 나름대로 한마디쯤은 할 말이 있을꺼라 생각한다.
한국 애니계 역사상 이렇게 많은 수의 업계인들이 밀집한 케이스는 극히 드물었으며(장소도 장소다. 서울 광장이라니)
서울 코믹같은 수많은 사례를 들어봐도 이만큼의 초유의 오프라인 이벤트는 당시로써는 찾기 힘들었던 것이다.

투니데이.

필자는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었고 업계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가는 과정도 아니었기에 기획의도까지는 정확하게 할 수는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보자면 나름대로 오프라인의 컨탠츠를 만들어 나가려는 투니버스의 시도가 아니었을까?
당시 WE라고 하는 파격적인 앨범이 2편까지 발매되기도 했었고.
그런 분위기를 타고서 많은 사람들이 서울 광장으로 몰려들었는데 그들이 기대하고 있었던것은
투니데이라고 하는 행사의 성공 여부 보다도
당시의 최고의 인기를 구사하고 있었던 버즈의 출연 여부보다도(사실 버즈의 공연이 끝나자 앞줄의 대부분은 빠져나갔다.)
단 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용신. 그 날의 일이 있고나서 투니버스 최고의 블루칩으로 떠오르면서 끝없는 상승가도를 달리기 시작하며
일부에서는 한국의 히라노 아야나 미즈키 나나 정도로 비유되는 성우다.


처음에는 성우가 목적이 아니었다??!

그녀의 약력을 잘 살펴보면 처음부터 애니 성우를 목적으로 달리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각종 방송의 게스트나 cm송 등을 담당하면서 나름대로 사회에서 적응을 잘 해가던 시기도 눈에 보이고
나름대로 괜찮은 역활을 맡아가면서 어느 정도 지명도를 얻어간 것으로 보인다.
그런 그녀의 행보에서 2003년 온미디어 성우극회 전속 성우 5기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파격적이었다.
애니 더빙이라고 함은 지상파의 외화 팀이 주를 이루던 시대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당시 투니버스 케이블에서 유선방송으로 내려오면서 혁신적일 정도로 수많은 작품을 들여왔고
열성적으로 방송을 송출하기 시작했고 그 와중에 수많은 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 흐름속에서 이용신씨는 EX-DRIVER라는 작품의 조연으로 첫 신고를 치렀고
그 다음의 작품이었던 달빛천사의 루나라는 역으로 단숨에 자신의 가치를 알리기 시작한다.

차오르는 보름달 처럼..

당시 업계의 움직임을 봤을때 이용신이라는 성우의 발탁은 거의 파격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때 기억으로 대부분의 주연급은 정미숙씨나 최덕희씨 정도가 지배적이었던 판도에서 나온 신인급의 출동이었으니까.
신동식 PD님의 과감한 선택이었다고 개인적으로는 보고 있다. 왜냐면 지식이 부족했던 그 시절 필자의 귀에 들렸던 목소리도 완벽에 가깝다는 느낌은 아니었으니까. 어색함도 느껴지고 역활에 맞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던 기억도 있지만
역시 그녀를 돋보이게 했었던건 달빛천사에 등장하는 수많은 노래가 아니었나 싶다. WE3의 킬링 타이틀은 BUZZ의 활주나 유정석씨의 질풍가도보다는 이용신씨의 나의 마음을 담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필자고, 수많은 사람들의 구매 이유도 그것이었으니까.
05년도의 투니데이의 라이브는 이 기세에 불을 지르는 역활을 해줬고, 수많은 사람들은 그 공연장에서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도 하야시바라 메구미나 호리에 유이같은 노래하는 성우를 가질수 있겠구나"
라고 말이다. 
실제로 그 이후에 수많은 작품에 참가하면서 그런 작품마다 오프닝이나 엔딩을 담당하면서
그 기대를 충족시켜줬고 그 당시에 느꼇던 가능성이 현실로 다가옴을 느끼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을 것이다.
근데 지금 생각해보자면 그 때. 루나의 성우를 맡고 그때 라이브를 했던 그 타이밍이 말 그대로 만월의 시대였던 것일까?
그 이후로 이용신씨에 대한 평가는 점점 양극성을 띄기 시작한다.

성우에 왜 안티가 있나??!

한국 성우라는 직업. 특히나 애니 더빙에 관련된 성우들은 반드시 일본 성우라는 거대한 벽을 맞대면서 살아간다.
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그랑죠나 선가드가 한국 애니라고 믿던 사람들이 많던 그 시절과는 달리
인터넷이 발달하고 세계가 열리면서 대부분이 한국으로 들어오기 전에 애니를 일본판으로 보고있는 경우가 대다수를 차지한다.
당연히 더빙 성우들은 일본쪽의 연기와 모니터링 되어서 비교 되기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이런 말이 나오게 된다.

"원작과 비슷하지 않아. 어색해. 어울리지 않아."라고.

필자의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그건 오판이라고 본다. 그건 그 나라의 애니이지 우리의 애니가 아니다. 우리의 애니만이 우리의 소리를 온전하게 담아낼수 있고 완벽에 가까운 더빙을 만들어낼수 있다. 사실 다른 나라의 음성을 이렇게 완벽에 가깝게 덮어씌워서 우리나라의 것으로 만드는 우리나라의 성우분들의 기술력을 칭찬해야 되는거 아닌가?
실제로 일본판을 보지 않고 한국판을 먼저 본 후에 일본판을 보고 나면 그 섬뜩한 감정이 느껴진다.
필자는 카우보이 비밥과 환상게임이라는 작품에서 그것의 절정을 느꼇는데 그것은 이미 일본의 애니가 아니라 우리의 애니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과는 달리 사람들은 그 원작과의 괴리감을 견뎌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자연스럽게 안티를 형성하면서 세력을 키워가기 시작한다.
그 안티의 주요 대상중에 하나가 바로 이용신씨다. 
이용신씨가 연기한 케릭터는 처음 데뷔한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많아졌고 연기는 날로 늘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루나와 엘리(레이브)와 민지(학원앨리스)와 히나이치고(로젠메이든)을 잘 들어보면 그 차는 명확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미 그때 너무나도 많은 것을 보여주고 가능성을 열어놨던 이용신씨의 대한 기대수치는 점점 높아졌고, 급기야 비교대상이
전설에 가까우신 분들인 양정화씨나 윤미나씨 정도를 같은 선상에 놓게 되면서 어느 정도 한정된 역활만을 해오신 이용신씨는 꽤나 많은 안티 세력을 양성하게 되고 많은 비난을 듣는 경우가 많아졌다. 필자의 생각으로도 새로운 역에 도전하고 있다는 느낌보다는 어느 시점에서 정체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많고 말이다.

밤하늘에 빛나는 보름달을 생각하며

2009년 8/30은 한국 업계에서 굉장히 중요한 날로 기억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animelo summer live 프로젝트에 근접할지도 모르는 희망을 품게 하는 한.일 애니송 프로젝트가 열리는 날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차세대 스타중에 하나인 may'n이라던가 타카하시 요코나 이토 카나코같은 기라성 같은 사람들이 내한이 예정되어 있는데
그들과 이름을 나란히 하고 있는 이용신이라는 이름이 올라가 있다.
05년도의 그날부터 약 5년이 지난 지금. 그녀가 달빛천사의 노래를 들고 나올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아마도 케릭케릭 체인지의 노래를 들고 나올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데 필자는 감히 말해본다.
그녀는 반드시 달빛천사의 노래를 들고 그곳에 나가야 한다고. 일본의 성우들이 모이는 자리에 로컬라이징한 노래를 들고가는건 그리 좋은 모습으로 비쳐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필자는 그 노래를 들고 나가서 다시 한번 모두에게 되새겨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때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필자도 이제 군대에 와 있을 정도의 나이가 되었는데 그 때 서울광장에서 그녀의 노래를 열렬히 따라부르던 그 사람들에게 새겨졌던 감동을. 인터넷의 동영상이나 투니버스의 방송으로 그 노래를 들었던 사람들의 설레임과 그곳에 가지 못했던 아쉬움. 그리고 한국의 성우분들의 인기 상승을 꿈꾸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꿈을 말이다.
달은 그믐달로 져가지만 다시 한번 보름달로 차오른다. 그것처럼 처럼 어느정도 침체기에 와있는 업계에 찬란한 달빛을 비춰주어
그들에게 다시 새로운 꿈을 한번 꾸게 해줬으면 좋겠다.

by 카리스 | 2009/06/14 10:26 | 카리스의 업계인 이야기 | 트랙백 | 덧글(9)

업계 관련 지식의 학문화를 추진중입니다.

넵. 카리스입니다.


부대 진중문고에는 나름 많은 무협지와 판소가 있다는건
저번에 말한 적이 있는거 같은데...

비뢰도를 읽다가 굉장히 감명받은 구절이 있었습니다.


애소저희의 비연태가
"삼부 수치의 학문화를 이루기 전까지는 천무학관을 졸업하지 않겠네!"
대충 이런 뉘앙스의 문장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업계 지식의 학문화를 추진중에 있습니다.

우선
1차 프로젝트로
한국 성우 & 제작자 들에 대한 
에세이를 기획중이고

나아가서
업계의 잡다한 지식부터 용어까지
방대한 양의 지식을 학문화 할 계획입니다.

군대라서 나름 힘드다는게 문제라면 문제랄까
(보안때문에 프린트가 안된단 말이야!!! 어떻게 다 외워서 싸지방을 내려오라고!!)

이걸
아는 친구에게 이야기 했더니
하는 말.

"니도 어쩔 수 없는 덕후인가보네. 재능을 낭비하고 있어!"

아니.
업계인으로써 업계에 대한 지식을 집필하겠다는데
재능의 낭비라니.
올바른 소비라능.ㅋ

by 카리스 | 2009/06/13 18:00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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